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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싸는데
책꽂이 사이에서 낡은 수첩 하나가
조용히 안부를 묻는다.
내 귀에만 들렸을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무심히
그동안 잘 있었느냐고
별일은 없었느냐고
그러다 지워져 보이지 않던 주소 몇 개가
낡은 수첩 속에서 비로소 갑갑한 고개를 내밀더니
이번에는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지며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냐고
별일은 없었느냐고
어쩌면 그것은 내가 나에게 묻는 안부이기도 하였다
그 날 나는 오랫동안 이삿짐 싸는 걸 멈추고
낡은 수첩 속의 주소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정말 잘 지내느냐고
정말 별 일은 없는 거냐고
묻고 또 물었다
나에게 물었다
김시천 시인의 <안부2>
스마트폰이 있기 전에는
수첩에 전화번호와 주소 적어 다녔죠.
손으로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적어뒀던 이름들...
그 수첩에 적힌 사람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을까...
아니, 나는 잘 지내고 있나...
= CBS FM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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