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지명에는 재미있는 이름들이 많다.
그 이름만 들어도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추측되는 곳도 있거니와
이름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식 사 동
이름만으로도 배가 부를 것 같은 동네 이름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서부에 위치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으로
원래 고양군 구이면(九耳面) 식사리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이면에서 원당면(元堂面)으로 관할이 변경되었고
1996년에 일산구에 포함되었다가, 2005년에 일산 동구 관할이 되었다는데
식사(食寺)라는 지명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
이름에서 보듯이 밥하고 관련이 있기는 있다. 스님이 몰래 밥을 날라다 주게 되면서 이 마을을 '밥절'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를 한자화하여 '밥 식(食)'자와 '절 사(寺)'자를 써서 식사동이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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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달 산
이 지명은 또 뭐지?
건달들이 모여 사는 산인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세곡리에 위치한 산(고도:328m)으로 발안천의 발원지라는데
생각보다 역사가 깊은 지명으로 각종 고지도에서 빠짐없이 기록될 정도로
옛 남양 땅의 중요한 랜드마크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건달'이라는 산 이름 유래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산에 돌이 많고 나무가 적어 산다운 맛이 없다 하여 '건달'이라 불렀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산의 형태가 멀리서 보면 잘생긴 모습이나
가깝게 보면 난봉부리는 남정네 같다 하여 '건달'이라 불렀다는 설이라고 ...
판 교 동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중부에 위치한 동네인데
충남 서천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곳이 또 있다.
판교 신도시 개발과 판교 IC 등에 의해 지금은 많이 알려진 지명이 되었는데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이다.
조선 시대 천천산 봉수가 가까이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광주부 낙생면의 일부였고
이름에서 추측되듯이 목판(木板)으로 놓은 다리라 하여
우리말로는 '너더리' · '널다리'라고 하였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판교'가 되었단다.
말 죽 거 리
영화 제목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더 많이 알려지기도 한 곳이지만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양재역 사거리 일대 즉 현재 지하철 3호선 양재역 부근이다.
제주도에서 올려 보낸 말을 서울로 보내기 전에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손질하고 말죽을 쑤어 먹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하나는 남쪽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사람들이나 서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타고 온 말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 하고
자신도 이곳 주막에서 여장을 풀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배 부 른 산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산(고도:437m)으로 포복산, 배부릉산이라고 부른다는데
예전에는 식악산(食岳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산 지명이 옛날 원주에 홍수가 나면 문막 쪽의 배를 이 산에서 불렀던 데서 연유했다는 설,
산의 모양이 만삭의 임산부 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고 ...
이곳은 언뜻 생각하기엔 먹는 것과 상관이 있나 하였더니
배를 부른다, 배가 부르다 등의 행위와 모양에 기인한 지명이 되겠다.
아 차 산
조선시대 명종 때 용하기로 소문난 점쟁이인 홍계관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왕은 홍계관에 궤짝 속에 든 쥐가 몇 마리인지를 맞춰보라고 했고,
홍계관은 "세 마리"라고 답했지만
궤짝을 열어 보니 쥐가 한 마리뿐이자, 왕은 형관을 불러 홍계관의 사형을 명하였다.
그가 끌려간 후 왕은 문득 쥐를 잡아다 배를 갈랐는데, 뱃속에 새끼 두 마리가 들어있었고
이미 홍계관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왕은
"아차!"하며 안타까워했다는 데에서
그 고개 이름을 아차고개, 산을 아차산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청 담 동
서울시 강남구의 북동쪽에 위치한 동네로 지금은 부를 상징하는 동네로 여겨지지만
옛날엔 이 일대에 맑은 못이 있었고
한강변의 물이 맑아 이 마을을 청숫골이라 한 데서 청담동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1914년 청담리로 불리게 되었고, 1963년 성동구 청담동이 되었다가
1975년 강남구 신설로 이에 속하였단다.

장 승 배 기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노량진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옛날에 이 일대는 인가가 없고 울창한 나무숲이었다는데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잊지 못해
화산(수원)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으로 전배하러 가다가
이 지점에서 쉬면서, "이곳에 장승을 만들어 세우고
하나는 장사 모양을 한 남자 장승을 세워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고 이름 붙이고,
또 하나는 여자 장승을 세워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으로 하여라" 하고 명하였다고 한다.
어명으로 장승배기에는 곧 두 개의 장승이 세워졌고
이는 왕이 안심하고 행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데
이때부터 장승배기란 지명이 붙게 되었으며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가는 길에 이 장승 앞에 어가를 멈추고 쉬었다고 한다.
http://blog.naver.com/9339june/220836723305
상도동, <'장승배기'>의 '추잡'한 역사와 그 ‘꼬락서니’.
상도동, <"장승백이"의 유래>는,- '서울 역사편찬원'(서울시청)과 '동작구...
blog.naver.com
연 신 내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북한산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이 곳은 예로부터
큰 바위와 사찰이 많아 부처님의 서광이 서려있는 곳이라 믿어졌다고 하는데 조선시대부터 역참(국가의 명령이나 공문서를 전달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고 전송하며 접대하는 일을 위하여 마련된 교통·통신 기관)이 있던 연신내는
오늘날에도 교통의 요지.
그런데 연신내는 행정구역상 존재하지 않는 지명이다.
1623년, 광해군과 사림들과의 갈등이 나날이 깊어지자
조카였던 능양군은 마침내 반정을 감행,
함께 뜻을 모은 사림세력들과 능양군은 각자 군사를 모아 북한산 아래 개천에 모여들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서라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고 ...
행여 변심을 한 것은 아닐까 초조해하던 능양군과 반군들은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이서는 헐레벌떡 나타나고
궁궐로 진격한 능양군과 군사들은 마침내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반정에 성공한 후
능양군이 즉위하고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서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다른 신하들과 함께 정국공신의 칭호를 받아 경기관찰사에 임명되지만
거사 당일 지각을 했던 이서는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고
이후 사람들은 이서가 능양군을 기다리게 했던 곳이라 하려
이 곳을 연신내(延臣川)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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