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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나무

Recompanion 2025. 10. 3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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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 지 우  -

1952년 전남 해남 출생.
서울대 미학과와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데뷔
시집:<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겨울 나무로 부터 봄 나무에로>
     <나는 너다>,<게 눈 속의 연꽃>등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   *   *   *   *   *   *   *   *   *




봄은 봄대로 꽃이 있어 좋고

여름은 조금 덥긴 해도 녹색 잎이 무성한 숲이 있어 좋다.

가을도 가을 나름대로

가을꽃이 있고 울긋불긋 낙엽이 있어 좋다.

물론,

겨울도 추위 속에

하얀 설경을 볼 수 있어 그 또한 나쁘지만은 않다.



이제 11월이다.

11월은 가을이라 해야 할지 겨울이라 해야 할지...

아뭏든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있다.



11월은 일년 열두 달 중에서도

참 황량한 달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11월을 싫어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등 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마무리 잘 하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르겠다.

일년이 다 끝나간다고...





시월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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