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지 우 -
1952년 전남 해남 출생.
서울대 미학과와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데뷔
시집:<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겨울 나무로 부터 봄 나무에로>
<나는 너다>,<게 눈 속의 연꽃>등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 * * * * * * * * *
봄은 봄대로 꽃이 있어 좋고
여름은 조금 덥긴 해도 녹색 잎이 무성한 숲이 있어 좋다.
가을도 가을 나름대로
가을꽃이 있고 울긋불긋 낙엽이 있어 좋다.
물론,
겨울도 추위 속에
하얀 설경을 볼 수 있어 그 또한 나쁘지만은 않다.
이제 11월이다.
11월은 가을이라 해야 할지 겨울이라 해야 할지...
아뭏든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있다.
11월은 일년 열두 달 중에서도
참 황량한 달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11월을 싫어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등 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마무리 잘 하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르겠다.
일년이 다 끝나간다고...
시월 마지막 날에...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작은 친절, 큰 기적 (0) | 2025.11.01 |
|---|---|
| 거대한 가속의 시대 (0) | 2025.11.01 |
| 살아온 세월이 아름다워 (0) | 2025.10.31 |
| 우리가 사랑해야 한다면 (0) | 2025.10.31 |
| 쉴 틈이 없다 (0) | 2025.10.30 |